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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경주 선도산 아래 연곡서당(鳶谷書堂)을 아시나요?


경주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25일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경주부에서 서쪽 물길을 건너면 신라 시조왕 전설의 성모사(聖母祠)와 김유신장군과 보희(寶姬)의 꿈 이야기 그리고 조선에 건립된 서악서원(西岳書院) 등 해동역사의 자취가 깃든 서악동 선도산(仙桃山:僊桃山:仙挑山)이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신라 때 토함산(吐含山)을 동악·금강산(金剛山)을 북악·선도산을 서악(西岳)·함월산(含月山)을 남악으로 불렀고, 서악은 서형산(西兄山)·선도산·서술산(西述山)·서연산(西鳶山) 등 서쪽의 서(西)와 신선이 된 소아(蘓娥)의 전설에 등장하는 연(鳶:솔개)이 결합해 다양하게 불렸다. 서산류씨 류의택(柳宜澤,1719~?)은 이곳 선도산 기슭에 연곡서당(鳶谷書堂)을 짓고 후학양성에 힘쓴 인물로, 내남면 두릉(杜陵) 화곡의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선생의 동생이다.


화계선생은 광풍정파(光風亭派) 류윤렴(柳允濂)의 현손으로 1687년 오암(鰲菴) 류기서(柳起瑞,1652~1713)의 차자로 태어나 작은아버지 류태서(柳泰瑞,1659~1732)의 양자로 입적되어 가업을 이었고, 1730년 44세에 화계서당을 짓고, 1735년 49세의 늦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해 학행과 효행을 크게 드러냈다. 게다가 내남면 화곡의 아름다운 산수를 벗 삼아 고향에 머물며 유유자적한 처사문인의 길을 간 화계는 중국의 정현(鄭玄,127~200)을 사숙(私淑)하고, 당나라 한유·두보의 학풍과 산수관의 풍류를 계승하였으며, 「괘변의의(卦變疑義)」등 심오한 학문과 저서 『화계집』을 남겼다.


동생 류의택은 자가 윤겸(潤兼)으로, 부친의 나이가 거의 60세에 태어났으며, 문행(文行)이 있었고, 인천채씨 부인을 만나 류하응(柳河應)·류하근(柳河根) 두 아들을 두었다. 선도산 아래에서 강학하였다고 전하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서악을 출입하며 그곳에서 살았는지 자료가 부족해서 알 수는 없지만, 내남 두릉마을의 화곡에서 서악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화계는 서악의 연곡서당에 자주 머물며 「留題鳶谷書堂」·「宿鳶谷書堂 復次軒字韻」·「次鳶谷書堂韻二首」등 다수의 작품을 지었고, 동생을 위해 연곡(鳶谷)이라 재(齋)의 호(號)를 지어 주었다. 또 『화계집』권6,「詩·示宜澤」에서 “나는 화계서사의 주인이 되고, 너는 연곡서당의 스승이 되었구나.(我作花溪書社主 汝爲鳶谷塾堂師)”며 동생을 격려하는 구절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서당이 보급되며 학문을 통한 배움의 확대가 이뤄지고, 혼란한 정국과 출세의 한계 그리고 가문의 계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당은 지역인재 양성과 지역민 교육을 담당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어 간다. 서악에 세운 연곡서당은 지역의 인재양성과 예학정신을 계승하는 강학의 장소로 활용되었고, 화계서당과 더불어 경주부 서쪽 가숙(家塾:집안 글방)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지역의 소중한 정보를 담는다. 경주의 수많은 조선 선비들이 서당을 열어 학문을 주창하였고, 지금이라도 옛 경주에 설치되었던 서당의 규모와 현황 등이 파악되기를 소망하며, 『화계집』권9에 실린 연곡서당 기문을 소개한다.

연곡서당기(鳶谷書堂記)
집안에 글방의 숭상함이 있었는데, 무릇 세상의 등급이 날로 낮아지면서부터 학교에서 글 외는 소리가 매우 작아졌다. 집안에서 경영하는 글방 역시 끊어져 없어지고 겨우 명맥만 남았는데, 지금 연곡서당(鳶谷書堂)이 그 가운데 하나다. 서당은 선도산 아래에 있고, 선도산은 옛적 서연산(西鳶山)으로 불렸기에 서당 역시 ‘연(鳶)’자를 넣어 이름하였다. 옛날 소아(蘓娥)가 거처를 정한 곳이 이 산으로, 솔개가 나는 것을 보고는 멈춘 곳을 따라 머물렀는데, 이에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이는 솔개가 소아를 위해 발몽(發蒙)한 것이고, 소아는 솔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지금 산 아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문에 뜻을 둔 자 가운데 이곳 서당에 귀의하지 않음이 없고, 이곳 서당에서 글을 소리 내어 외우고[강송(講誦)], 예를 갖추어 겸손하게 양보[읍양(揖讓)]하며 다른 서당엔 가지 않았다. 마치 소아가 솔개를 따라 이곳에 거처를 정한 것처럼 이곳 서당 역시 여러 유생들이 솔개[鳶]와 같았다. 훗날 여러 유생들이 이곳 서당을 표준으로 삼아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배우고 익히기를 마치 어린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처럼 한다면 새가 깊은 골짝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갈 것이다. 다만 짧은 시간이겠지만 세상의 등급이 낮아지고 있으니 만회(挽回)할 만하다.


또 궁구하여 말하자면 그곳에서 배우면 그 기질의 변화됨이 마치 곤(鯤)이 붕(鵬)새로 변하여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면 9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소아가 신선의 도를 얻은 것을 부러워하겠는가? 『시경(詩經)』에 “솔개가 하늘 위를 난다(鳶飛戾天)”라 하였다. 솔개가 하늘을 날 때 땅 가까이에서 날고 또 날아올라 위로 나아가길 그만두지 않는다면 하늘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초학자 가운데 “아래를 배워 위에 달한다(下學而上達)”는 것 역시 이와 같으니, 만일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메추리가 울타리를 노닐며 땅에서 날개만 푸드덕하는 것과 같을 뿐이니, 솔개가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여러 유생들이 어찌 함께 힘쓰지 않겠는가? 서당의 스승된 자 역시 그것을 살펴야 할 것이다. 서당을 짓는데 약간의 사람들이 도왔고, 도문재(都文載)·김창옥(金昌玉)이 주도하였다.
경주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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