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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렬 교수의 논어묵상25, 26


경주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25일









↑↑ 안병렬 교수
25.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하시되 진미의오 우진선야로다. 위무하시되 진미의나 미진선야로다.

<주석>
韶 :舜 나라 시대의 舞樂.
武 :武王 시대의 舞樂

<번역>
공자께서 순 임금 시대의 소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름다움을 다하였고 또 선함을 다하였다. 무왕 시대의 무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름다움은 다하였으나 선함을 다하지는 못하였다”

<번역>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공자는 음악의 대가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평은 아주 정확할 것이다. 또 공자의 평이라 이 자체가 그만 평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美나 善의 개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미는 審美的인 측면이요 선은 윤리적인 측면이 아닐까 유추하여 볼 뿐이다. 그런데 이 음악에 대한 평가가 그 나라에 대한 평가와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즉 순임금의 은나라는 평화로운 나라였으며 무왕에 의해 무력으로 세운 주나라는 살벌한 분위가 있었을 터이니 그 음악도 그리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그 곳의 음악을 듣고 그 곳의 정치까지 가늠하였다지 않은가? 그래서 이 음악을 채집하려고 세운 관청이 樂府였다. 그 음악을 듣고 그 정치를 가늠하여 보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이다. 그만큼 그 음악을 중요시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음악만 보아도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빠르고 좀 광란적인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우아한 분위기는 없는 것이다. 영혼 밑바닥의 그윽함은 없다. 그저 경쾌하고 즉흥적이고 외향적이다. 이 사회 저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것이다.

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자왈 거상불관하며 위례불경하며 임상 불애하면 오하이관지재리오?

<주석>
爲禮 :行禮이다.
臨喪 :임하여 타인의 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변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에 있으면서 도리어 능히 관용하지 못하고 예를 행할 때에 공경하지 못하고 상을 당함에 슬퍼하지 아니하면 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보겠는가?

<묵상>
어떤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있다. 평등사회라는 개념과는 다른 차원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고 나이 적은 사람이 있으며 그 직책상 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위에 있는 사람은 관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매끄럽고 부드럽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떤 의식이든지 행함에는 공경스러움이 우선이다. 공경이 없는 의식은 의례적이요 나아가 허식이다. 또한 상을 당함에 슬픔이 없다면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감정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 중요한 세 가지 측면을 실행치 못한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거만한 관리들에 대한 경종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경주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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